콩스탕스 탑(에그모르트)
에그모르트 성벽의 콩스탕스 탑은 1248년 성왕 루이가 십자군 출항을 위해 세운 요새의 일부였으나, 18세기에는 프랑스 개신교 여성들을 가둔 감옥으로 쓰이며 전혀 다른 이름으로 기억된다. 낭트 칙령 폐지 이후 불법 예배에 참석했다가 붙잡힌 위그노 여성들이 이 원형 방에 갇혔는데, 개종 서약서에 서명만 하면 언제든 풀려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이 거부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에그모르트, 프랑스
- 분류
- 유적
- 교파
- 개신교
- 시대
- 1248
- 좌표
- 43.568483, 4.189702
에그모르트 성벽의 콩스탕스 탑은 1248년 성왕 루이가 십자군 출항을 위해 세운 요새의 일부였으나, 18세기에는 프랑스 개신교 여성들을 가둔 감옥으로 쓰이며 전혀 다른 이름으로 기억된다. 낭트 칙령 폐지 이후 불법 예배에 참석했다가 붙잡힌 위그노 여성들이 이 원형 방에 갇혔는데, 개종 서약서에 서명만 하면 언제든 풀려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이 거부했다. 그 가운데 마리 뒤랑은 열아홉 살에 갇혀 서른여덟 해를 이 탑에서 보내고 쉰일곱에 풀려났으며, 그가 갇힌 방 한가운데 우물 가장자리 돌에는 프랑스어로 '저항하라'(REGISTER, 곧 RÉSISTER)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지금도 볼 수 있다. 그 글자를 누가 새겼는지는 확정할 수 없지만, 이 단어는 프랑스 개신교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 탑 꼭대기에 서면 카마르그 습지와 지중해가 보이는데, 갇힌 이들이 매일 보았을 그 자유의 풍경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탑 아래층은 병사들의 거처였고 위층의 둥근 방이 감옥으로 쓰였는데, 채광이라고는 천장의 둥근 구멍 하나뿐이어서 겨울에는 비와 눈이 그대로 들이쳤다. 에그모르트 성벽은 1.6킬로미터 전체를 걸을 수 있어, 탑에서 시작해 도시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콩스탕스 탑(에그모르트)은(는) 어디에 있나요?
에그모르트, 프랑스에 있습니다. 위도 43.568483, 경도 4.189702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콩스탕스 탑(에그모르트)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248 시기의 유산입니다.
콩스탕스 탑(에그모르트)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에그모르트 성벽의 콩스탕스 탑은 1248년 성왕 루이가 십자군 출항을 위해 세운 요새의 일부였으나, 18세기에는 프랑스 개신교 여성들을 가둔 감옥으로 쓰이며 전혀 다른 이름으로 기억된다. 낭트 칙령 폐지 이후 불법 예배에 참석했다가 붙잡힌 위그노 여성들이 이 원형 방에 갇혔는데, 개종 서약서에 서명만 하면 언제든 풀려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이 거부했다.
콩스탕스 탑(에그모르트)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너희가 참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이를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20). 서명 한 번이면 나갈 수 있었으나 서른여덟 해를 남은 사람을 생각합니다.
Tower of Constance, Aigues-Mortes — Aigues-Mortes, FR
Part of the fortress Louis IX built in 1248 to embark on crusade, the Tower of Constance is remembered for something else entirely: in the eighteenth century it held French Protestant women as prisoners. Huguenot women arrested at illegal services were confined in this round chamber and could have walked free at any time by signing a renunciation, which most refused. Marie Durand was imprisoned at nineteen and released at fifty-seven, after thirty-eight years; on the stone rim of the well at the centre of her chamber the French word for 'resist' is carved and can still be seen. Who cut it cannot be established, but the word became the emblem of French Protestant endurance. From the top the Camargue and the Mediterranean open out — the free horizon the prisoners saw every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