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1439년에 142미터 첨탑을 완성해 이후 20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붉은 보주산 사암으로 지어져 해질 무렵이면 온 건물이 장밋빛으로 물든다. 15세기에는 요한 가일러 폰 카이저스베르크가 이 강단에서 30년 넘게 설교하며 교회의 부패를 정면으로 꾸짖어, 종교개혁 이전 독일어권 설교 갱신의 상징이 되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스트라스부르, 프랑스
- 분류
- 성당
- 교파
- 천주교
- 시대
- 1439
- 좌표
- 48.58189, 7.751056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1439년에 142미터 첨탑을 완성해 이후 20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붉은 보주산 사암으로 지어져 해질 무렵이면 온 건물이 장밋빛으로 물든다. 15세기에는 요한 가일러 폰 카이저스베르크가 이 강단에서 30년 넘게 설교하며 교회의 부패를 정면으로 꾸짖어, 종교개혁 이전 독일어권 설교 갱신의 상징이 되었다. 1524년 도시가 종교개혁을 받아들이면서 이 대성당은 개신교 예배당이 되어 마르틴 부처가 이곳을 무대로 개혁을 이끌었고, 칼뱅도 1538년부터 3년간 스트라스부르에 머물며 프랑스인 난민 교회를 목회하고 『기독교 강요』를 크게 확장했다. 1681년 루이 14세가 도시를 병합하며 성당은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갔으나, 개혁과 반개혁이 한 건물을 거쳐 간 이 역사는 유럽 교회의 축소판이다. 16세기 천문시계는 지금도 정해진 시각에 사도들이 그리스도 앞을 지나가는 장면을 연출한다. 부처는 이 도시에서 개신교 진영의 화해를 시도해 루터파와 츠빙글리파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고, 훗날 잉글랜드로 건너가 성공회 기도서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첨탑 전망대까지는 332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며, 꼭대기에서 라인강 건너 검은숲까지 보인다.
자주 묻는 질문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은(는) 어디에 있나요?
스트라스부르, 프랑스에 있습니다. 위도 48.58189, 경도 7.751056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439 시기의 유산입니다.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1439년에 142미터 첨탑을 완성해 이후 20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붉은 보주산 사암으로 지어져 해질 무렵이면 온 건물이 장밋빛으로 물든다. 15세기에는 요한 가일러 폰 카이저스베르크가 이 강단에서 30년 넘게 설교하며 교회의 부패를 정면으로 꾸짖어, 종교개혁 이전 독일어권 설교 갱신의 상징이 되었다.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벧전 3:15). 한 건물에서 서로 다른 고백이 부딪히고 이어졌습니다.
Strasbourg Cathedral — Strasbourg, FR
Completed to a height of 142 metres in 1439, Strasbourg Cathedral was the tallest building in the world for over two centuries, and its Vosges sandstone turns rose-coloured at dusk. In the fifteenth century Johann Geiler von Kaysersberg preached here for more than thirty years against the corruption of the church; when the city adopted the Reformation in 1524 the cathedral became a Protestant church under Martin Bucer, and John Calvin spent three years in Strasbourg from 1538 pastoring French refugees and greatly expanding the Institutes. Louis XIV's annexation in 1681 returned it to Catholic use, so Reformation and Counter-Reformation both passed through one buil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