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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패트릭 대성당

성당천주교 뉴욕 뉴욕 · 1879 · St. Patrick's Cathedral

성 패트릭 대성당은 1858년에 첫 삽을 떠 1879년에 문을 연 뉴욕 대주교좌 성당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천주교 성당이다. 건축가 제임스 렌윅이 유럽의 고딕 대성당을 본떠 흰 대리석으로 설계했고, 100미터가 넘는 두 첨탑은 1888년에야 완성되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위치
뉴욕 뉴욕, 미국
분류
성당
교파
천주교
시대
1879
좌표
40.758611, -73.976389

성 패트릭 대성당은 1858년에 첫 삽을 떠 1879년에 문을 연 뉴욕 대주교좌 성당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천주교 성당이다. 건축가 제임스 렌윅이 유럽의 고딕 대성당을 본떠 흰 대리석으로 설계했고, 100미터가 넘는 두 첨탑은 1888년에야 완성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건물을 지은 돈의 출처다. 당시 뉴욕의 천주교인 대다수는 대기근을 피해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가난한 이민자들로, 하녀와 부두 노동자로 일하며 멸시를 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몇 푼씩 모아 낸 헌금이 이 성당의 기둥이 되었다. 착공 당시 이 자리는 도시 외곽의 허허벌판이어서 '렌윅의 어리석음'이라 놀림받았으나, 도시가 자라나 지금은 맨해튼 한복판 마천루 사이에 서 있다. 남북전쟁으로 공사가 여러 해 멈추기도 했다. 성당 안에는 여러 나라 이민자 공동체가 봉헌한 제대와 조각이 자리해, 이 도시가 어떤 사람들의 손으로 세워졌는지를 보여 준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매일 여러 차례 미사가 드려지고, 관광객과 기도하러 온 이들이 나란히 앉는다. 웅장한 회중석에 앉아, 하루 품삯을 쪼개어 이 벽을 세운 이름 없는 이민자들을 떠올려 보자.

✝ 순례자의 묵상이 화려한 대리석 벽은 부자의 기부가 아니라, 하녀와 부두 노동자로 일하던 이민자들이 몇 푼씩 모아 세운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막 12:43). 하나님은 액수가 아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나는 남은 것을 드리는지, 아까운 것을 드리는지 이 기둥 앞에서 돌아봅니다.
출처·검증
근거 1

자주 묻는 질문

성 패트릭 대성당은(는) 어디에 있나요?

뉴욕 뉴욕, 미국에 있습니다. 위도 40.758611, 경도 -73.976389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성 패트릭 대성당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879 시기의 유산입니다.

성 패트릭 대성당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성 패트릭 대성당은 1858년에 첫 삽을 떠 1879년에 문을 연 뉴욕 대주교좌 성당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천주교 성당이다. 건축가 제임스 렌윅이 유럽의 고딕 대성당을 본떠 흰 대리석으로 설계했고, 100미터가 넘는 두 첨탑은 1888년에야 완성되었다.

성 패트릭 대성당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 화려한 대리석 벽은 부자의 기부가 아니라, 하녀와 부두 노동자로 일하던 이민자들이 몇 푼씩 모아 세운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막 12:43).

St. Patrick's Cathedral — New York, New York, US

Begun in 1858 and opened in 1879, St. Patrick's is the seat of the Archbishop of New York and the most visited Catholic church in the United States. James Renwick designed it in white marble after the great Gothic cathedrals of Europe, and its two spires of over a hundred meters were finished in 1888. What astonishes is where the money came from: most New York Catholics then were poor Irish immigrants who had fled famine and worked as maids and dockhands, and their small offerings raised these walls. The site was open country when work began, earning the nickname Renwick's Folly, and construction halted for years during the Civil War. Altars given by immigrant communities fill the interior.

✝ PILGRIM'S REFLECTIONThese marble walls were raised not by rich donors but by immigrants working as maids and dockhands, giving a few coins at a time. 'This poor widow has put more into the treasury than all the others' (Mark 12:43). Do I give what is left over, or what costs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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