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베크 성 마리아 교회
뤼베크의 성 마리아 교회는 1351년 무렵 완성된 북독일 벽돌 고딕의 원형으로, 38.5미터에 이르는 벽돌 궁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벽돌 천장이다. 한자 동맹의 중심 도시였던 뤼베크의 상인들이 프랑스 고딕의 석조 대성당을 벽돌로 구현하려 한 결과이며, 이 형식이 발트해 연안 70여 곳의 교회로 퍼져 나갔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뤼베크, 독일
- 분류
- 교회
- 교파
- 개신교
- 시대
- 1351
- 좌표
- 53.8677, 10.685
뤼베크의 성 마리아 교회는 1351년 무렵 완성된 북독일 벽돌 고딕의 원형으로, 38.5미터에 이르는 벽돌 궁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벽돌 천장이다. 한자 동맹의 중심 도시였던 뤼베크의 상인들이 프랑스 고딕의 석조 대성당을 벽돌로 구현하려 한 결과이며, 이 형식이 발트해 연안 70여 곳의 교회로 퍼져 나갔다. 1942년 3월 성지주일 밤 공습으로 교회가 불타면서 두 개의 종이 탑에서 떨어져 돌바닥에 박혔는데, 전후 복원 때 그 종을 치우지 않고 깨진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지금도 남쪽 탑 아래 바닥에 부서진 종이 그때 모습으로 놓여 있고, 그 옆에 '전쟁의 희생자를 기억하며'라는 표지가 있다. 이 교회는 디트리히 북스테후데가 1668년부터 40년간 오르가니스트로 일한 곳이기도 해서, 젊은 바흐가 그의 연주를 들으려 400킬로미터를 걸어왔다. 교회 안에는 1942년 화재로 회칠이 떨어지며 드러난 중세 벽화가 일부 남아 있다. 뤼베크에는 이 교회를 포함해 일곱 개의 첨탑이 있어, 강 건너에서 보는 실루엣이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자주 묻는 질문
뤼베크 성 마리아 교회은(는) 어디에 있나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뤼베크, 독일에 있습니다. 위도 53.8677, 경도 10.685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뤼베크 성 마리아 교회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351 시기의 유산입니다.
뤼베크 성 마리아 교회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뤼베크의 성 마리아 교회는 1351년 무렵 완성된 북독일 벽돌 고딕의 원형으로, 38.5미터에 이르는 벽돌 궁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벽돌 천장이다. 한자 동맹의 중심 도시였던 뤼베크의 상인들이 프랑스 고딕의 석조 대성당을 벽돌로 구현하려 한 결과이며, 이 형식이 발트해 연안 70여 곳의 교회로 퍼져 나갔다.
뤼베크 성 마리아 교회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시 13:1). 깨진 종을 치우지 않고 남긴 결정을 생각합니다.
St. Mary's Church, Lübeck — Lübeck, Schleswig-Holstein, DE
St Mary's in Lübeck, completed about 1351, is the model of north German brick Gothic, and its brick vault at 38.5 metres is the highest in the world. Merchants of Lübeck, the leading Hanseatic city, set out to build in brick what French Gothic had built in stone, and the form spread to some seventy churches around the Baltic. When bombing on the night of Palm Sunday in March 1942 burned the church, two bells fell from the tower and embedded themselves in the stone floor; in the rebuilding it was decided to leave them broken where they lay. They remain beneath the south tower with a plaque in memory of the victims of war. Dieterich Buxtehude served as organist here for forty years from 1668, and the young Bach walked four hundred kilometres to hear him 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