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동교회
승동교회는 1893년 미국 북장로교 무어(Samuel Moore, 모삼열) 선교사가 설립한 초기 장로교회로, 백정을 비롯해 세상에서 천대받던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한때 '백정교회'라 불리기도 했다. 무어 선교사는 곤당골에서 백정 박성춘을 전도했고, 그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자 신분에 매인 일부 교인들이 반발했으나, 교회는 끝내 신분의 벽을 넘어 한 형제로 함께 예배하는 길을 지켰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
- 분류
- 교회
- 교파
- 개신교
- 시대
- 1893
- 좌표
- 37.572, 126.9857
승동교회는 1893년 미국 북장로교 무어(Samuel Moore, 모삼열) 선교사가 설립한 초기 장로교회로, 백정을 비롯해 세상에서 천대받던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한때 '백정교회'라 불리기도 했다. 무어 선교사는 곤당골에서 백정 박성춘을 전도했고, 그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자 신분에 매인 일부 교인들이 반발했으나, 교회는 끝내 신분의 벽을 넘어 한 형제로 함께 예배하는 길을 지켰다. 한 예배당 안에서 양반과 백정이 나란히 무릎 꿇는 이 광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복음의 능력을 생생히 증언했다. 뿐만 아니라 1919년 3·1운동을 준비할 때는 학생 대표들이 이 교회에 은밀히 모여 거사를 논의해, 독립운동사에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인사동 골목 안에 자리한 1910년대의 붉은 벽돌 예배당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지금도 예배 처소로 쓰인다. 예배당 앞에 세워진 3·1운동 기념 표지석과 오래된 벽돌 벽면을 함께 살펴보라.
자주 묻는 질문
승동교회은(는) 어디에 있나요?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위도 37.572, 경도 126.9857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승동교회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893 시기의 유산입니다.
승동교회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승동교회는 1893년 미국 북장로교 무어(Samuel Moore, 모삼열) 선교사가 설립한 초기 장로교회로, 백정을 비롯해 세상에서 천대받던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한때 '백정교회'라 불리기도 했다. 무어 선교사는 곤당골에서 백정 박성춘을 전도했고, 그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자 신분에 매인 일부 교인들이 반발했으나, 교회는 끝내 신분의 벽을 넘어 한 형제로 함께 예배하는 길을 지켰다.
승동교회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가장 천대받던 이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지도자로 서던 그 자리에서, 복음은 세상의 신분표를 뒤엎었습니다. 사람을 겉모습과 출신으로 나누는 마음이 내 안에 없는지 이곳에서 돌아봅니다.
Seungdong Presbyterian Church — Seoul Jongno-gu, KR
Seungdong Church was founded in 1893 by Presbyterian missionary Samuel Moore, who preached the gospel to butchers and other outcasts, so that it was once called 'the paekjong church.' Moore evangelized the butcher Bak Seong-chun in Gondanggol, and when Bak was baptized and became a church leader, some members bound to class distinctions objected — yet the church held to the way of worshiping together as brothers across the barrier of rank. The sight of aristocrat and outcast kneeling side by side in one sanctuary vividly testified to the gospel's power that all are equal in Christ. When the March First Movement was being prepared in 1919, student leaders gathered here in secret to plan their part, leaving a clear mark on the history of the independence struggle. Its 1910s red-brick sanctuary in an Insadong alley is a Seoul cultural heritage site still used for worship today. Look at both the memorial stone marking 1919 out front and the old brick wal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