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오라투아르 개신교회
루브르 맞은편에 선 오라투아르 교회는 1621년 오라토리오회의 성당으로 지어져 루이 13세 시대의 왕실 예배당으로 쓰이다가, 1811년 나폴레옹의 칙령으로 개혁교회(위그노) 신자들에게 넘겨진 뒤 지금까지 파리를 대표하는 개신교 예배당으로 남아 있다. 낭트 칙령 폐지(1685) 이후 한 세기 동안 프랑스에서 개신교 예배가 법으로 금지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왕의 성당이 개신교회가 된 이 자리는 프랑스 개신교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상징이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파리, 프랑스
- 분류
- 교회
- 교파
- 개신교
- 시대
- 1621
- 좌표
- 48.861667, 2.34
루브르 맞은편에 선 오라투아르 교회는 1621년 오라토리오회의 성당으로 지어져 루이 13세 시대의 왕실 예배당으로 쓰이다가, 1811년 나폴레옹의 칙령으로 개혁교회(위그노) 신자들에게 넘겨진 뒤 지금까지 파리를 대표하는 개신교 예배당으로 남아 있다. 낭트 칙령 폐지(1685) 이후 한 세기 동안 프랑스에서 개신교 예배가 법으로 금지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왕의 성당이 개신교회가 된 이 자리는 프랑스 개신교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상징이다. 교회 바깥 벽에는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의 첫 희생자였던 위그노 지도자 가스파르 드 콜리니 제독의 기념상이 서서, 학살이 시작된 생제르맹록세루아 교회 쪽을 마주 본다. 프랑스 개신교의 고난과 회복이 한 골목 안에서 마주 보고 있는 셈이다. 콜리니 기념상은 1889년 프랑스 개신교인들이 모금해 세운 것으로, 학살 300여 년 만에 희생자를 공적으로 기린 첫 기념물 가운데 하나였다. 이 교회는 지금도 프랑스 개혁교회의 주요 강단이자 사회 문제에 관한 개신교 목소리가 나오는 자리로, 주일 예배에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루브르 오라투아르 개신교회은(는) 어디에 있나요?
파리, 프랑스에 있습니다. 위도 48.861667, 경도 2.34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루브르 오라투아르 개신교회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621 시기의 유산입니다.
루브르 오라투아르 개신교회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루브르 맞은편에 선 오라투아르 교회는 1621년 오라토리오회의 성당으로 지어져 루이 13세 시대의 왕실 예배당으로 쓰이다가, 1811년 나폴레옹의 칙령으로 개혁교회(위그노) 신자들에게 넘겨진 뒤 지금까지 파리를 대표하는 개신교 예배당으로 남아 있다. 낭트 칙령 폐지(1685) 이후 한 세기 동안 프랑스에서 개신교 예배가 법으로 금지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왕의 성당이 개신교회가 된 이 자리는 프랑스 개신교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상징이다.
루브르 오라투아르 개신교회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고후 4:8). 금지된 예배를 숲과 골짜기에서 드리던 이들의 후손이 이 자리에서 찬송합니다.
Oratoire du Louvre, Paris — Paris, FR
Built in 1621 as an Oratorian chapel and used as a royal chapel under Louis XIII, this church opposite the Louvre was granted to the Reformed congregation by Napoleon's decree in 1811 and remains the principal Protestant church of Paris. Given that Protestant worship was outlawed in France for a century after the Revocation of the Edict of Nantes in 1685, a royal chapel turned Reformed sanctuary marks the emergence of French Protestantism from hiding. On its outer wall stands the memorial to Admiral Gaspard de Coligny, the Huguenot leader killed first in the St. Bartholomew's Day Massacre of 1572, facing the church whose bell is said to have signalled that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