넨드럼 수도원 유적
스트랭퍼드호의 마히섬에 있는 넨드럼 수도원은 5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아일랜드 수도원 유적으로, 세 겹의 돌담이 동심원을 이루며 언덕을 감싸는 켈트 수도원 특유의 배치가 가장 잘 남아 있는 사례다. 안쪽 원에는 교회와 둥근 탑의 기초, 해시계가 있고 바깥 원에는 작업장과 밭이 있어, 기도와 노동이 어떻게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는지 걸어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북아일랜드 넨드럼, 영국
- 분류
- 수도원
- 교파
- 공통
- 시대
- 450
- 좌표
- 54.498, -5.648
스트랭퍼드호의 마히섬에 있는 넨드럼 수도원은 5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아일랜드 수도원 유적으로, 세 겹의 돌담이 동심원을 이루며 언덕을 감싸는 켈트 수도원 특유의 배치가 가장 잘 남아 있는 사례다. 안쪽 원에는 교회와 둥근 탑의 기초, 해시계가 있고 바깥 원에는 작업장과 밭이 있어, 기도와 노동이 어떻게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는지 걸어서 확인할 수 있다. 1999년 이곳 갯벌에서 619년과 787년에 만들어진 조수 물레방아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밀물과 썰물의 힘으로 곡식을 빻던 이 시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조수 방앗간으로 확인되었다. 7세기 수도자들이 조수를 이용한 기계를 만들어 쓴 셈이다. 이 수도원은 974년 원장이 자기 교회 안에서 불에 타 죽었다는 기록을 끝으로 문헌에서 사라졌고, 유적은 19세기에 재발견되었다. 유적 옆 작은 박물관에는 발굴된 해시계와 종, 그리고 조수 방앗간의 목재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섬으로 이어지는 둑길을 차로 건널 수 있고, 언덕 위에서 스트랭퍼드호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자주 묻는 질문
넨드럼 수도원 유적은(는) 어디에 있나요?
북아일랜드 넨드럼, 영국에 있습니다. 위도 54.498, 경도 -5.648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넨드럼 수도원 유적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450 시기의 유산입니다.
넨드럼 수도원 유적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스트랭퍼드호의 마히섬에 있는 넨드럼 수도원은 5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아일랜드 수도원 유적으로, 세 겹의 돌담이 동심원을 이루며 언덕을 감싸는 켈트 수도원 특유의 배치가 가장 잘 남아 있는 사례다. 안쪽 원에는 교회와 둥근 탑의 기초, 해시계가 있고 바깥 원에는 작업장과 밭이 있어, 기도와 노동이 어떻게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는지 걸어서 확인할 수 있다.
넨드럼 수도원 유적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기도하고 일하라'(베네딕도 규칙). '무엇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골 3:23).
Nendrum Monastery — Mahee Island, Northern Ireland, GB
On Mahee Island in Strangford Lough, Nendrum is an early Irish monastic site thought to date from the fifth century and the clearest surviving example of the concentric plan, three rings of stone wall wrapping a hill. The inner ring holds the church, the base of a round tower, and a sundial; the outer rings held workshops and fields, so the division of prayer and labour can be walked. In 1999 excavation on the foreshore uncovered tide mills built in 619 and 787, which used the rise and fall of the lough to grind grain and are the oldest known tide mills in the world — seventh-century monks running machinery on the tide. The monastery disappears from the records after 974, when its abbot is said to have burned to death in his own church, and the site was rediscovered in the nineteenth cent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