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트 생피에르생폴 대성당
낭트의 생피에르생폴 대성당은 1434년에 착공되어 457년 만인 1891년에야 완공된 성당으로, 흰 튀포 석회암으로 지어진 37.5미터 높이의 본당이 파리 노트르담보다 높다. 이 도시의 이름은 교회사에서 1598년 앙리 4세가 반포한 낭트 칙령으로 기억되는데, 30년 넘게 이어진 종교전쟁을 끝내며 개신교 위그노에게 예배의 자유와 안전 도시를 인정한 유럽 최초의 본격적인 종교 관용 법령이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낭트, 프랑스
- 분류
- 성당
- 교파
- 천주교
- 시대
- 1434
- 좌표
- 47.21843, -1.55017
낭트의 생피에르생폴 대성당은 1434년에 착공되어 457년 만인 1891년에야 완공된 성당으로, 흰 튀포 석회암으로 지어진 37.5미터 높이의 본당이 파리 노트르담보다 높다. 이 도시의 이름은 교회사에서 1598년 앙리 4세가 반포한 낭트 칙령으로 기억되는데, 30년 넘게 이어진 종교전쟁을 끝내며 개신교 위그노에게 예배의 자유와 안전 도시를 인정한 유럽 최초의 본격적인 종교 관용 법령이었다. 위그노였다가 왕위를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앙리 4세가 낸 이 칙령은 87년간 프랑스 개신교의 법적 보호막이 되었으나, 1685년 루이 14세가 이를 폐지하면서 수십만 명이 나라를 떠나는 대탈출이 시작되었다. 성당 안에는 앙리 4세의 장모이자 이 지역을 다스린 프랑수아 2세 부부의 르네상스 무덤이 있다. 1972년 대화재와 2020년 방화로 두 차례 큰 피해를 입고도 복원이 이어지고 있다. 성당 안 프랑수아 2세 무덤의 네 모퉁이에는 정의와 지혜, 용기, 절제를 나타내는 여인상이 서 있는데, 이 무덤을 주문한 사람이 앙리 4세의 장모 안 드 브르타뉴다. 낭트 칙령의 원본은 지금 파리와 제네바에 나뉘어 보관되어 있으며, 이 도시의 성에는 그 역사를 다루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자주 묻는 질문
낭트 생피에르생폴 대성당은(는) 어디에 있나요?
낭트, 프랑스에 있습니다. 위도 47.21843, 경도 -1.55017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낭트 생피에르생폴 대성당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434 시기의 유산입니다.
낭트 생피에르생폴 대성당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낭트의 생피에르생폴 대성당은 1434년에 착공되어 457년 만인 1891년에야 완공된 성당으로, 흰 튀포 석회암으로 지어진 37.5미터 높이의 본당이 파리 노트르담보다 높다. 이 도시의 이름은 교회사에서 1598년 앙리 4세가 반포한 낭트 칙령으로 기억되는데, 30년 넘게 이어진 종교전쟁을 끝내며 개신교 위그노에게 예배의 자유와 안전 도시를 인정한 유럽 최초의 본격적인 종교 관용 법령이었다.
낭트 생피에르생폴 대성당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 서로 죽이던 이들이 한 문서 앞에서 칼을 내려놓았고, 87년 뒤 그 문서가 찢겼습니다.
Nantes Cathedral — Nantes, FR
Begun in 1434 and finished only in 1891, Nantes Cathedral raises a nave of white tufa limestone to 37.5 metres, higher than Notre-Dame de Paris. The city's name belongs to church history through the Edict of Nantes, issued here by Henry IV in 1598, which ended more than thirty years of religious war by granting Huguenots freedom of worship and fortified towns — Europe's first substantial law of religious toleration. Henry, a Huguenot who converted to gain the throne, gave French Protestants eighty-seven years of legal protection until Louis XIV revoked the edict in 1685 and hundreds of thousands fled the country. The cathedral has been damaged by fire twice in recent memory, in 1972 and 2020, and restoration contin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