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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 데 프란시아 선교원

성당천주교 캘리포니아 오션사이드 · 1798 · Mission San Luis Rey de Francia

산 루이스 레이 데 프란시아 선교원은 1798년 6월 13일 페르민 라수엔 신부가 세운 열여덟 번째 선교원으로, 규모가 가장 커서 '선교원의 왕'이라 불린다. 1815년에 완성된 십자 모양 성당은 벽돌과 흙벽돌로 쌓아 올려 지금도 처음 모습을 지키고 있으며, 나무 돔 아래로 빛이 떨어지는 내부는 캘리포니아 선교원 가운데 가장 넓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위치
캘리포니아 오션사이드, 미국
분류
성당
교파
천주교
시대
1798
좌표
33.232352, -117.319761

산 루이스 레이 데 프란시아 선교원은 1798년 6월 13일 페르민 라수엔 신부가 세운 열여덟 번째 선교원으로, 규모가 가장 커서 '선교원의 왕'이라 불린다. 1815년에 완성된 십자 모양 성당은 벽돌과 흙벽돌로 쌓아 올려 지금도 처음 모습을 지키고 있으며, 나무 돔 아래로 빛이 떨어지는 내부는 캘리포니아 선교원 가운데 가장 넓다. 전성기에는 수천 명이 이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며 밀을 심고 가축을 길렀는데, 이 지역 원주민은 이 선교원의 이름을 따 루이세뇨라 불리게 되었다. 그 공동체가 신앙과 기술을 배운 자리인 동시에 자기 땅과 언어를 잃은 자리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감추지 않고 기억되어야 한다. 1834년 해체된 뒤 군대 막사와 폐허를 거쳤으나, 1893년 프란치스코회가 돌아와 다시 수도 공동체를 이루었다. 박물관에는 십팔 세기 성구와 루이세뇨 사람들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뜰 한가운데에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전해지는 후추나무가 서 있다. 성당 곁 묘지에는 이곳에서 살다 간 원주민 삼천여 명이 잠들어 있다. 오늘도 이곳은 수사들이 사는 수도원이자 사람들이 며칠씩 머물며 조용히 기도하는 피정의 집이다.

✝ 순례자의 묵상군대 막사가 되고 폐허가 되었던 이 큰 집은, 지금 지친 사람들이 며칠씩 쉬며 기도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나는 쉼 없이 달리는 것을 믿음이라 여길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짐을 내려놓고 그분 앞에 앉기를 구합니다.
출처·검증
근거 1

자주 묻는 질문

산 루이스 레이 데 프란시아 선교원은(는) 어디에 있나요?

캘리포니아 오션사이드, 미국에 있습니다. 위도 33.232352, 경도 -117.319761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산 루이스 레이 데 프란시아 선교원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798 시기의 유산입니다.

산 루이스 레이 데 프란시아 선교원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산 루이스 레이 데 프란시아 선교원은 1798년 6월 13일 페르민 라수엔 신부가 세운 열여덟 번째 선교원으로, 규모가 가장 커서 '선교원의 왕'이라 불린다. 1815년에 완성된 십자 모양 성당은 벽돌과 흙벽돌로 쌓아 올려 지금도 처음 모습을 지키고 있으며, 나무 돔 아래로 빛이 떨어지는 내부는 캘리포니아 선교원 가운데 가장 넓다.

산 루이스 레이 데 프란시아 선교원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군대 막사가 되고 폐허가 되었던 이 큰 집은, 지금 지친 사람들이 며칠씩 쉬며 기도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Mission San Luis Rey de Francia — Oceanside, California, US

Founded on 13 June 1798 by Father Fermín Lasuén, San Luis Rey is the largest of the California missions and is known as the King of the Missions. Its cruciform church of 1815, built of adobe and fired brick, survives largely as first built, and light falling from its wooden dome fills the widest mission interior in the state. At its height thousands lived within these walls raising wheat and cattle, and the local Native people came to be called Luiseño after the mission, a name that marks both what they received and what they lost of their own land and language. Secularised in 1834, the buildings served as army barracks and then fell into ruin until the Franciscans returned in 1893. Today it is again a working friary and a retreat house where guests stay for days of quiet prayer.

✝ PILGRIM'S REFLECTIONThese walls served as barracks and lay in ruins; now weary people come to rest and pray here for days.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Matt 11:28). Today I set the load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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