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가브리엘 아르캉헬 선교원
산 가브리엘 아르캉헬 선교원은 1771년 9월 8일에 세워진 네 번째 캘리포니아 선교원으로, 열 해 뒤 이곳에서 출발한 정착민들이 로스앤젤레스를 세웠기에 '로스앤젤레스의 대모'라 불린다. 두꺼운 벽에 계단식 버팀벽과 종 벽을 두른 성당은 에스파냐 남부의 무어 양식을 닮아 다른 선교원과 확연히 다르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캘리포니아 샌게이브리얼, 미국
- 분류
- 성당
- 교파
- 천주교
- 시대
- 1771
- 좌표
- 34.096667, -118.106667
산 가브리엘 아르캉헬 선교원은 1771년 9월 8일에 세워진 네 번째 캘리포니아 선교원으로, 열 해 뒤 이곳에서 출발한 정착민들이 로스앤젤레스를 세웠기에 '로스앤젤레스의 대모'라 불린다. 두꺼운 벽에 계단식 버팀벽과 종 벽을 두른 성당은 에스파냐 남부의 무어 양식을 닮아 다른 선교원과 확연히 다르다. 이 일대에 살던 통바족은 이 선교원의 이름을 따 가브리엘리뇨라 불리게 되었는데, 그 이름 자체가 자기 언어와 삶의 자리를 잃은 흔적이기도 하다. 선교원은 포도밭과 밀밭, 대장간으로 번성했으나 그 노동은 대개 원주민의 몫이었고, 전염병으로 많은 이가 세상을 떠났다. 2020년 7월 방화로 지붕과 내부가 불타 200년 넘은 제단과 그림이 위태로웠지만, 두꺼운 벽은 무너지지 않았고 교인들이 힘을 모아 복구해 다시 문을 열었다. 그을린 자국이 남은 벽 아래에서 지금도 매주 미사가 드려진다. 선교원 뜰에는 이백 년이 넘은 포도나무와 옛 포도주 저장고, 종을 걸었던 벽이 남아 있고, 박물관에는 통바족 신자들이 만든 성물과 오래된 장부가 전시되어 있다. 다시 봉헌된 성당에서는 스페인어와 영어, 베트남어로 미사가 드려진다. 불에 삼켜졌다가 되살아난 예배당은 그 자체로 하나의 증언이다.
자주 묻는 질문
산 가브리엘 아르캉헬 선교원은(는) 어디에 있나요?
캘리포니아 샌게이브리얼, 미국에 있습니다. 위도 34.096667, 경도 -118.106667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산 가브리엘 아르캉헬 선교원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771 시기의 유산입니다.
산 가브리엘 아르캉헬 선교원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산 가브리엘 아르캉헬 선교원은 1771년 9월 8일에 세워진 네 번째 캘리포니아 선교원으로, 열 해 뒤 이곳에서 출발한 정착민들이 로스앤젤레스를 세웠기에 '로스앤젤레스의 대모'라 불린다. 두꺼운 벽에 계단식 버팀벽과 종 벽을 두른 성당은 에스파냐 남부의 무어 양식을 닮아 다른 선교원과 확연히 다르다.
산 가브리엘 아르캉헬 선교원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불이 지붕을 삼켰지만 벽은 서 있었고, 사람들은 재를 치우고 다시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타지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Mission San Gabriel Arcángel — San Gabriel, California, US
Founded on 8 September 1771, San Gabriel is the fourth California mission and is called the Godmother of Los Angeles, since the settlers who founded that city set out from here in 1781. Its thick-walled church with capped buttresses and a pierced bell wall recalls Moorish southern Spain and looks unlike any other mission. The Tongva people of this valley came to be called Gabrieleño after the mission, a name that itself marks what was lost. Vineyards, wheat fields and workshops made San Gabriel prosperous, but the labour was largely Native and epidemics took a heavy toll. In July 2020 a fire destroyed the roof and interior, endangering a two-hundred-year-old altarpiece, yet the massive adobe walls stood; parishioners rebuilt, and the church was rededicated and is again in weekly use. Beneath scorched walls, worship continues where it beg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