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우파파 국립역사공원
칼라우파파는 몰로카이 섬 북쪽, 육백 미터 절벽에 가로막힌 좁은 반도다. 1866년부터 하와이 정부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배에 실어 이곳에 내려놓았고, 백여 년 동안 팔천 명 가까운 이들이 가족과 헤어져 이 땅에서 살다가 죽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하와이 칼라우파파, 미국
- 분류
- 성지
- 교파
- 천주교
- 시대
- 1866
- 좌표
- 21.1778, -156.96
칼라우파파는 몰로카이 섬 북쪽, 육백 미터 절벽에 가로막힌 좁은 반도다. 1866년부터 하와이 정부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배에 실어 이곳에 내려놓았고, 백여 년 동안 팔천 명 가까운 이들이 가족과 헤어져 이 땅에서 살다가 죽었다. 1873년 벨기에 출신의 젊은 사제 다미앵 드뵈스테르가 자원해 이 반도로 건너왔다. 그는 성당을 고치고 집을 짓고 관을 짜고 무덤을 팠으며, 상처를 손으로 씻기고 같은 그릇에 밥을 먹었다. 십육 년 뒤 그도 병에 걸렸고, 어느 주일 설교를 '우리 한센병 환자들은'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1889년 마흔아홉에 세상을 떠나 자신이 세운 성 필로메나 성당 곁에 묻혔다. 1888년에는 프란치스코회 수녀 마리안 코프가 와서 삼십 년을 더 섬겼다. 다미앵의 유해는 1936년 고향 벨기에로 옮겨졌으나, 1995년 그의 오른손이 이곳 무덤으로 돌아와 다시 묻혔다. 그가 손을 본 성 필로메나 성당에는 병든 이들이 기침할 때 고개를 내밀 수 있도록 바닥에 뚫어 둔 구멍이 남아 있다. 지금도 몇몇 주민이 이곳에 살고 있어 방문은 제한되지만, 절벽 아래 바다와 낡은 성당, 그리고 이름표만 남은 무덤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한다.
자주 묻는 질문
칼라우파파 국립역사공원은(는) 어디에 있나요?
하와이 칼라우파파, 미국에 있습니다. 위도 21.1778, 경도 -156.96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칼라우파파 국립역사공원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866 시기의 유산입니다.
칼라우파파 국립역사공원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칼라우파파는 몰로카이 섬 북쪽, 육백 미터 절벽에 가로막힌 좁은 반도다. 1866년부터 하와이 정부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배에 실어 이곳에 내려놓았고, 백여 년 동안 팔천 명 가까운 이들이 가족과 헤어져 이 땅에서 살다가 죽었다.
칼라우파파 국립역사공원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다미앵은 병자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준 사람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Kalaupapa National Historical Park — Kalaupapa, Hawaii, US
Kalaupapa is a narrow peninsula on Molokaʻi, cut off by cliffs six hundred metres high. From 1866 the Hawaiian government put people with leprosy ashore here, and over a century some eight thousand were separated from their families and died in this place. In 1873 a young Belgian priest, Damien de Veuster, volunteered to come. He repaired the church, built houses, made coffins and dug graves, washed sores and ate from the same dish as the sick. Sixteen years later he contracted the disease himself, and one Sunday began his sermon with the words we lepers. He died in 1889 at the age of forty-nine and was buried beside St Philomena Church, which he had built. In 1888 the Franciscan sister Marianne Cope arrived and served here another thirty years. A few residents still live here and access is limited, but the sea below the cliffs, the old church and rows of simple graves tell th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