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감리교회
장흥감리교회는 강원 철원 동송의 옛 장흥리에 자리한 감리교회로, 한국 기도원 운동의 뿌리와 항일 신앙운동의 기억이 함께 깃든 곳이다. 1940년 이 교회에 부임한 박경룡 목사는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성도들과 함께 은밀한 항일 기도 모임을 이끌었다.
- 위치
- 강원 철원군, 대한민국
- 분류
- 교회
- 교파
- 개신교
- 시대
- 일제강점기 · 1940년 항일 기도운동의 발상지
- 좌표
- 38.19218, 127.25612
장흥감리교회는 강원 철원 동송의 옛 장흥리에 자리한 감리교회로, 한국 기도원 운동의 뿌리와 항일 신앙운동의 기억이 함께 깃든 곳이다. 1940년 이 교회에 부임한 박경룡 목사는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성도들과 함께 은밀한 항일 기도 모임을 이끌었다. 일제의 감시가 극심하던 시절, 그는 마음 놓고 기도할 처소를 찾아다니다 인근 한탄강 순담계곡 일대에 이르렀고, 벗 이성해 집사가 자신의 과수원을 팔아 그 땅을 사들여 1940년 '조선수도원'을 세웠다. 수도원이라는 이름조차 쓸 수 없어 '군마양성소'로 위장했던 이 기도 공동체가 훗날 대한수도원으로 이어졌으니, 장흥교회는 한국 개신교 수도·기도원 운동이 발아한 못자리라 할 만하다. 분단과 전쟁의 상흔이 짙게 밴 철원 땅에서 이 교회는 억압 속에서도 무릎으로 나라를 품었던 신앙의 자취를 증언한다. 순례자에게 이곳은 기도가 곧 저항이 되고 신앙이 곧 애국이 되었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조용한 성지다. 접경의 고요한 마을에서 그 무릎의 기도를 되새겨 보자.
자주 묻는 질문
장흥감리교회은(는) 어디에 있나요?
강원 철원군,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위도 38.19218, 경도 127.25612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장흥감리교회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일제강점기 · 1940년 항일 기도운동의 발상지 시기의 유산입니다.
장흥감리교회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장흥감리교회는 강원 철원 동송의 옛 장흥리에 자리한 감리교회로, 한국 기도원 운동의 뿌리와 항일 신앙운동의 기억이 함께 깃든 곳이다. 1940년 이 교회에 부임한 박경룡 목사는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성도들과 함께 은밀한 항일 기도 모임을 이끌었다.
장흥감리교회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총칼로는 막을 수 없는 저항이 있으니, 그것은 나라를 위해 무릎 꿇는 기도였다. 감시의 눈을 피해 은밀히 모여 조국의 해방을 구한 이들에게 기도는 곧 싸움이었다.
Jangheung Methodist Church — Cheorwon, Gangwon, KR
Jangheung Methodist Church in the old Jangheung-ri of Dongsong, Cheorwon, is a place where the roots of Korea's prayer-retreat movement and the memory of anti-Japanese faith come together. Pastor Park Gyeong-ryong, appointed here in 1940, led a secret anti-Japanese prayer gathering with believers who longed for Korea's independence. In a time of intense surveillance, seeking a place to pray freely, he came to the Sundam valley of the nearby Hantan River, where his friend deacon Lee Seong-hae sold his orchard to buy the land and founded the Joseon Prayer Retreat in 1940. Unable even to use the word retreat, the community disguised itself as a horse-training station, and later became the Daehan Prayer Retreat, making Jangheung Church the seedbed of Korea's Protestant prayer-retreat movement. On Cheorwon soil scarred by division and war, it witnesses to a faith that embraced the nation on its knees under oppre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