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학교
한신대학교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의 목회자를 길러 온 신학의 요람으로, 1940년 서울 승동교회에서 문을 연 조선신학원을 뿌리로 한다. 승동교회 장로 김대현의 헌금과 신학자 김재준의 지도 아래 세워진 이 학교는, 성서를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읽으려는 진보적 신학 전통과 사회 참여의 정신을 벼려 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경기 오산시, 대한민국
- 분류
- 신학교
- 교파
- 개신교
- 시대
- 1940년 조선신학원 개교 · 1980년 오산 이전
- 좌표
- 37.19357, 127.02341
한신대학교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의 목회자를 길러 온 신학의 요람으로, 1940년 서울 승동교회에서 문을 연 조선신학원을 뿌리로 한다. 승동교회 장로 김대현의 헌금과 신학자 김재준의 지도 아래 세워진 이 학교는, 성서를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읽으려는 진보적 신학 전통과 사회 참여의 정신을 벼려 냈다. 1953년 김재준을 중심으로 한 신학 논쟁 끝에 기장이 분립하면서 한신은 이 교단의 신학적 산실이 되었고, 이후 문익환·문동환 형제와 안병무 등이 배출·활동하며 민주화와 인권, 민중신학의 흐름을 이 땅에 새겼다. 학교는 여러 차례 자리를 옮긴 끝에 1980년 무렵 경기 오산 양산동 캠퍼스에 자리 잡았고, 서울(강북)과 오산 두 캠퍼스 체제로 발전했다. 신학과 신앙, 그리고 인권과 통일을 향한 실천이 한자리에서 만난 이 학교의 여정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나란히 흘러왔다. 순례자에게 이곳은 신앙이 골방의 경건을 넘어 시대의 고난과 정의의 현장으로 나아간 한국 개신교의 한 갈래를 증언하는 자리다. 조용한 교정을 거닐며, 복음이 어떻게 역사의 광장에서 외쳐졌는지, 또 어떻게 십자가가 고난받는 이웃 곁으로 옮겨졌는지 헤아려 보자.
자주 묻는 질문
한신대학교은(는) 어디에 있나요?
경기 오산시,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위도 37.19357, 경도 127.02341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한신대학교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940년 조선신학원 개교 · 1980년 오산 이전 시기의 유산입니다.
한신대학교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한신대학교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의 목회자를 길러 온 신학의 요람으로, 1940년 서울 승동교회에서 문을 연 조선신학원을 뿌리로 한다. 승동교회 장로 김대현의 헌금과 신학자 김재준의 지도 아래 세워진 이 학교는, 성서를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읽으려는 진보적 신학 전통과 사회 참여의 정신을 벼려 냈다.
한신대학교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곳의 신앙은 골방의 무릎 꿇음에서 시작해 시대의 광장으로 걸어 나갔다. 정의를 외치는 일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결코 둘이 아님을 한신의 역사는 증언한다.
Hanshin University — Osan, Gyeonggi, KR
Hanshin University is a cradle of theology that has trained pastor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 (PROK, Kijang), rooted in the Joseon Theological Seminary opened in 1940 at Seungdong Church in Seoul. Built on the offering of elder Kim Dae-hyun and the leadership of theologian Kim Jae-jun, it forged a progressive tradition of reading Scripture in the language of its age together with a spirit of social engagement. When the PROK separated in 1953 after theological controversy centered on Kim Jae-jun, Hanshin became its theological womb, later shaping figures such as the brothers Moon Ik-hwan and Moon Dong-hwan and Ahn Byung-mu, and the currents of democratization, human rights, and Minjung theology. After several moves it settled around 1980 at its Osan campus in Gyeonggi. For pilgrims it witnesses to a strand of Korean Protestantism that carried faith beyond private piety into the arenas of suffering and just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