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남궁억 기념관
한서 남궁억 기념관은 강원 홍천 서면 모곡,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언론인이었던 한서(翰西) 남궁억(1863–1939) 선생이 말년을 바친 땅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남궁억은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개화기 지식인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신앙과 민족애를 하나로 품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강원 홍천군, 대한민국
- 분류
- 기념관
- 교파
- 개신교
- 시대
- 남궁억 (1863–1939) · 모곡 무궁화·기독교 민족운동
- 좌표
- 37.68876, 127.59879
한서 남궁억 기념관은 강원 홍천 서면 모곡,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언론인이었던 한서(翰西) 남궁억(1863–1939) 선생이 말년을 바친 땅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남궁억은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개화기 지식인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신앙과 민족애를 하나로 품었다. 1918년 그는 고향과도 같은 모곡으로 내려와 모곡학교(감리교 계열)를 세우고 교회를 일구며, 학생들과 함께 나라꽃 무궁화 묘목을 대량으로 길러 전국에 보급했다. 무궁화 보급운동은 곧 꺾이지 않는 민족혼을 심는 일이었기에, 그는 1933년 이른바 '무궁화와 십자가 사건(십자당 사건)'으로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그 후유증으로 1939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등 여러 찬송과 애국가요를 지어 신앙 안에서 나라 사랑을 노래하기도 했다. 기념관에는 그의 저서와 붓글씨, 신문 자료, 손수 지은 노래가 전시되어 있으며 인근에 묘역이 있다. 순례자에게 이곳은 십자가와 무궁화, 곧 신앙과 민족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만났는지를 보여 주는 자리다.
자주 묻는 질문
한서 남궁억 기념관은(는) 어디에 있나요?
강원 홍천군,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위도 37.68876, 경도 127.59879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한서 남궁억 기념관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남궁억 (1863–1939) · 모곡 무궁화·기독교 민족운동 시기의 유산입니다.
한서 남궁억 기념관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한서 남궁억 기념관은 강원 홍천 서면 모곡,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언론인이었던 한서(翰西) 남궁억(1863–1939) 선생이 말년을 바친 땅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남궁억은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개화기 지식인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신앙과 민족애를 하나로 품었다.
한서 남궁억 기념관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남궁억에게 무궁화 한 그루를 심는 일은 곧 꺾이지 않는 나라혼을 심는 기도였다. 신앙과 민족애는 그의 안에서 둘이 아니었으니, 십자가를 사랑한 마음이 곧 이 땅을 사랑한 마음이었다.
Hanseo Namgung Eok Memorial Hall — Hongcheon, Gangwon, KR
The Hanseo Namgung Eok Memorial Hall stands in Mogok, Seo-myeon, Hongcheon, Gangwon, on the land where the independence activist, educator, and journalist Hanseo Namgung Eok (1863-1939) devoted his final years. Founder of the Hwangseong Sinmun newspaper and a member of the Independence Club, Namgung was an enlightenment-era intellectual and devout Christian who held faith and love of nation as one. In 1918 he moved to Mogok, founding the Methodist-linked Mogok School and a church, and with his students raised great quantities of mugunghwa (rose of Sharon), Korea's national flower, distributing them nationwide. Because spreading the mugunghwa meant planting an unbroken national spirit, he was arrested in the 1933 Mugunghwa and Cross Incident, imprisoned, and died in 1939 from its aftereffects. He also composed hymns and patriotic songs. The hall displays his writings, calligraphy, newspapers, and songs, with his gravesite nearby, showing how cross and mugunghwa met in one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