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퍼탈 게마르크 교회
부퍼탈바르멘의 게마르크 교회는 1934년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제1차 고백교회 총회의 무대다. 나치 정권이 교회를 장악하려 하고 '독일 그리스도인'이라는 친나치 세력이 교회 지도부를 차지하자, 이에 반대하는 루터파·개혁파·연합파 대표 139명이 이 교회에 모여 '바르멘 신학 선언'을 채택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부퍼탈, 독일
- 분류
- 교회
- 교파
- 개신교
- 시대
- 1934
- 좌표
- 51.2711, 7.19778
부퍼탈바르멘의 게마르크 교회는 1934년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제1차 고백교회 총회의 무대다. 나치 정권이 교회를 장악하려 하고 '독일 그리스도인'이라는 친나치 세력이 교회 지도부를 차지하자, 이에 반대하는 루터파·개혁파·연합파 대표 139명이 이 교회에 모여 '바르멘 신학 선언'을 채택했다. 카를 바르트가 초안을 쓴 이 선언은 여섯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첫 항목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라고 선언하고, 교회가 국가 이념이나 지도자를 또 하나의 계시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선언 이후 고백교회 소속 목회자 다수가 체포되었고 상당수가 수용소에서 죽었다. 지금 이 교회 옆에는 그 역사를 다루는 기념관이 있고, 2000년대에는 인접한 유대교 회당과 함께 대화의 장을 여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바르멘 선언은 지금도 독일 개신교회의 신앙 문서 가운데 하나이며, 여러 나라의 교회가 자기 상황에서 이를 인용해 왔다. 남아프리카 반아파르트헤이트 시기의 벨하르 신앙고백도 이 선언을 본으로 삼았다.
자주 묻는 질문
부퍼탈 게마르크 교회은(는) 어디에 있나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부퍼탈, 독일에 있습니다. 위도 51.2711, 경도 7.19778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부퍼탈 게마르크 교회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934 시기의 유산입니다.
부퍼탈 게마르크 교회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부퍼탈바르멘의 게마르크 교회는 1934년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제1차 고백교회 총회의 무대다. 나치 정권이 교회를 장악하려 하고 '독일 그리스도인'이라는 친나치 세력이 교회 지도부를 차지하자, 이에 반대하는 루터파·개혁파·연합파 대표 139명이 이 교회에 모여 '바르멘 신학 선언'을 채택했다.
부퍼탈 게마르크 교회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한 말씀이시다'(바르멘 선언 제1항).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행 4:12).
Gemarker Kirche, Wuppertal-Barmen — Wuppertal, Nordrhein-Westfalen, DE
The Gemarker Kirche in Wuppertal-Barmen hosted the first synod of the Confessing Church from 29 to 31 May 1934. As the Nazi regime moved to control the churches and the pro-Nazi German Christians took over church leadership, 139 delegates from Lutheran, Reformed, and United churches gathered here and adopted the Barmen Theological Declaration. Drafted largely by Karl Barth, its six theses begin by declaring that Jesus Christ as attested in Scripture is the one Word of God whom we have to hear, making explicit that the church cannot accept a state ideology or leader as another revelation. Many Confessing Church pastors were arrested after the declaration and a number died in camps. A memorial centre beside the church now presents this history, and dialogue with the neighbouring synagogue has been pursued since the 200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