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lgrimWay 순례길 플래너

대정교회

교회개신교 제주 서귀포시 · 1937 · Daejeong Presbyterian Church

대정교회는 1937년 모슬포교회에서 분립하여 대정읍 안성리에 세워진 장로교회로, 20세기 초 이기풍 목사의 제주 선교로 시작된 산남 지역 개신교 신앙의 계보를 잇는 공동체다. 무엇보다 이 교회는 제주가 배출한 첫 목사이자 첫 순교자인 이도종 목사(1891~1948)를 기리는 순교기념비가 서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위치
제주 서귀포시, 대한민국
분류
교회
교파
개신교
시대
1937
좌표
33.2509, 126.2794

대정교회는 1937년 모슬포교회에서 분립하여 대정읍 안성리에 세워진 장로교회로, 20세기 초 이기풍 목사의 제주 선교로 시작된 산남 지역 개신교 신앙의 계보를 잇는 공동체다. 무엇보다 이 교회는 제주가 배출한 첫 목사이자 첫 순교자인 이도종 목사(1891~1948)를 기리는 순교기념비가 서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도종은 어린 시절 애월 금성교회에서 신앙을 받아들여 자랐고, 1937년 목사 안수를 받아 고향 제주 곳곳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한 향토 목회자였다. 그러나 1948년 4·3의 혼란 속에서 순회 예배를 위해 대정으로 향하던 중 무장 세력에게 끌려가 순교하였고, 교인들이 그 시신을 거두어 장사한 뒤 인근 산방산에서 돌을 옮겨와 순교기념비를 세웠다. 천주교 대정성지(정난주 마리아 유배지)와 같은 대정 땅에 있으나, 이곳은 개신교 신앙과 4·3의 상처가 겹쳐진 별개의 순례지다. 순례자는 이 비 앞에서 낯선 선교사의 손이 아니라 제주의 아들이 제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그 땅에서 피 흘린 자취를 만난다.

✝ 순례자의 묵상이도종 목사는 육지에서 온 손님이 아니라 제주가 낳은 아들로서,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그 흙에 피를 묻었다. 순교는 패배가 아니라 씨앗이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오늘 제주 교회의 열매는 그가 흘린 피에 빚지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대정교회은(는) 어디에 있나요?

제주 서귀포시,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위도 33.2509, 경도 126.2794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대정교회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937 시기의 유산입니다.

대정교회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대정교회는 1937년 모슬포교회에서 분립하여 대정읍 안성리에 세워진 장로교회로, 20세기 초 이기풍 목사의 제주 선교로 시작된 산남 지역 개신교 신앙의 계보를 잇는 공동체다. 무엇보다 이 교회는 제주가 배출한 첫 목사이자 첫 순교자인 이도종 목사(1891~1948)를 기리는 순교기념비가 서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정교회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도종 목사는 육지에서 온 손님이 아니라 제주가 낳은 아들로서,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그 흙에 피를 묻었다. 순교는 패배가 아니라 씨앗이었다.

Daejeong Presbyterian Church — Seogwipo, Jeju, KR

Daejeong Church, a Presbyterian congregation founded in 1937 when it separated from Mosulpo Church, stands in Anseong-ri of Daejeong-eup and continues the lineage of Protestant faith in Jeju's southern region that began with Rev. Lee Ki-poong's early-20th-century mission. Above all the church is known for the memorial stone honoring Rev. Lee Do-jong (1891-1948), the first pastor and first martyr Jeju itself produced. Lee received his faith as a boy at Geumseong Church in Aewol, was ordained in 1937, and traveled his native island as a homegrown minister preaching the gospel. In 1948, amid the chaos of the Jeju 4.3 uprising, he was seized while heading to Daejeong for a circuit service and martyred; his congregation buried him and raised the memorial with stones carried from nearby Sanbangsan. Though it shares the Daejeong district with the Catholic Daejeong holy site (the exile place of Jeong Nan-ju Maria), this is a distinct Protestant pilgrimage place where faith and the wounds of 4.3 overlap. Here pilgrims meet not the hand of a foreign missionary but a son of Jeju who shed his blood preaching to his own people.

✝ PILGRIM'S REFLECTIONRev. Lee Do-jong was no visitor from the mainland but a son born of Jeju, who buried his blood in its soil while preaching to his own people. Martyrdom was not defeat but seed. "Unless a grain of wheat falls in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alone; but if it dies, it bears much fruit" (John 12:24). The fruit of Jeju's church today is indebted to the blood he shed.
PilgrimWay에서 이 순례지로 루트 짜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