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상도밍구스 교회
리스본 호시우 광장 곁의 상도밍구스 교회는 1241년에 세워진 도미니코회 성당으로, 1506년 4월 이 교회 앞에서 리스본 학살이 시작된 자리다. 가뭄과 역병이 겹친 부활절 주간에 개종 유대인이 신앙을 의심받은 것을 계기로 군중이 도시의 개종 유대인 2천에서 4천 명을 사흘에 걸쳐 살해했고, 도미니코회 수도자 일부가 이를 선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리스본, 포르투갈
- 분류
- 교회
- 교파
- 천주교
- 시대
- 1506
- 좌표
- 38.714722, -9.138447
리스본 호시우 광장 곁의 상도밍구스 교회는 1241년에 세워진 도미니코회 성당으로, 1506년 4월 이 교회 앞에서 리스본 학살이 시작된 자리다. 가뭄과 역병이 겹친 부활절 주간에 개종 유대인이 신앙을 의심받은 것을 계기로 군중이 도시의 개종 유대인 2천에서 4천 명을 사흘에 걸쳐 살해했고, 도미니코회 수도자 일부가 이를 선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교회는 훗날 종교재판소의 판결 선고 장소로도 쓰였다. 2008년 리스본시는 교회 앞 광장에 '유대인 학살 희생자를 기억하며'라는 기념비를 세우고, 유대교와 가톨릭 대표가 함께 참석한 가운데 관용을 다짐했다. 교회 자체는 1755년 지진과 1959년 화재로 크게 파괴되었는데, 화재 뒤 벽과 기둥을 복원하지 않고 불에 그을린 채로 남겨 두어 지금 내부는 붉게 탄 돌기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교회 앞 광장 바닥에는 유대인의 별이 새겨진 기념판이 있고, 학살을 부추긴 이들 가운데 처형된 도미니코회 수도자 두 명의 이름도 기록에 남아 있다. 지금 이 교회는 리스본 아프리카계 이민자 공동체가 많이 찾는 교구 교회가 되어, 배제의 역사가 있던 자리에 이민자들이 모인다.
자주 묻는 질문
리스본 상도밍구스 교회은(는) 어디에 있나요?
리스본, 포르투갈에 있습니다. 위도 38.714722, 경도 -9.138447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리스본 상도밍구스 교회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506 시기의 유산입니다.
리스본 상도밍구스 교회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리스본 호시우 광장 곁의 상도밍구스 교회는 1241년에 세워진 도미니코회 성당으로, 1506년 4월 이 교회 앞에서 리스본 학살이 시작된 자리다. 가뭄과 역병이 겹친 부활절 주간에 개종 유대인이 신앙을 의심받은 것을 계기로 군중이 도시의 개종 유대인 2천에서 4천 명을 사흘에 걸쳐 살해했고, 도미니코회 수도자 일부가 이를 선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리스본 상도밍구스 교회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너는 살인하지 말라'(출 20:13). 교회 앞에서 시작된 학살을 기억하는 비석 앞에 섭니다.
Church of São Domingos, Lisbon — Lisbon, PT
São Domingos beside the Rossio, a Dominican church founded in 1241, is where the Lisbon massacre began in April 1506. In an Easter week of drought and plague, suspicion cast on a converted Jew set off a mob that killed between two and four thousand of the city's New Christians over three days, with some Dominican friars recorded as inciting it; the church later served for the reading of Inquisition sentences. In 2008 the city placed a memorial in the square before the church to the victims of the massacre, with Jewish and Catholic representatives together pledging tolerance. The building was badly damaged by the earthquake of 1755 and a fire in 1959, after which the walls and piers were left unrestored, so the interior shows reddened, fire-scarred s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