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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너드 선교 묘역

묘역개신교 테네시 채터누가 · 1817 · Brainerd Mission Cemetery

브레이너드 선교 묘역은 1817년 미국 해외선교회가 체로키 부족 가운데 세운 선교부의 마지막 흔적이다. 선교부의 이름은 십팔세기에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다 스물아홉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에게서 따왔다.

위치
테네시 채터누가, 미국
분류
묘역
교파
개신교
시대
1817
좌표
35.0101, -85.213

브레이너드 선교 묘역은 1817년 미국 해외선교회가 체로키 부족 가운데 세운 선교부의 마지막 흔적이다. 선교부의 이름은 십팔세기에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다 스물아홉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에게서 따왔다. 이곳에 온 선교사 가족들은 예배당과 학교와 방앗간과 밭을 일구고 체로키 아이들에게 성경과 글과 농사와 기술을 가르쳤으며, 체로키 말로 성경을 옮기는 일에도 힘을 보탰다. 이 선교부는 미국 교회가 원주민 가운데 세운 가장 잘 알려진 선교 학교의 하나였고, 여러 해 동안 동부 교회들이 보내는 헌금으로 살림을 꾸렸다. 개척지의 열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아 선교사와 그 어린 자녀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고, 세례를 받은 체로키 신자들도 같은 흙에 함께 묻혔다. 1830년대에 연방 정부가 체로키를 서쪽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이 지역은 집결지가 되었고, 선교부는 문을 닫았다. 선교사들 가운데 몇은 눈물의 길이라 불린 그 참혹한 이주길을 부족과 끝까지 함께 걸었다. 지금 선교부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낮은 돌담에 둘러싸인 백여 기의 무덤만 상가와 도로 사이에 남아 있는데, 차 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 작은 땅에 서면 잊힌 이름들이 오히려 또렷하게 다가온다.

✝ 순례자의 묵상선교부 건물도 학교도 사라지고 무덤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은 낯선 이들을 위해 자기 자녀까지 묻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 나는 아무 열매도 못 본 것 같은 수고를 두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주께서 다 세고 계심을 기억합니다.
출처·검증
근거 1

자주 묻는 질문

브레이너드 선교 묘역은(는) 어디에 있나요?

테네시 채터누가, 미국에 있습니다. 위도 35.0101, 경도 -85.213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브레이너드 선교 묘역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817 시기의 유산입니다.

브레이너드 선교 묘역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브레이너드 선교 묘역은 1817년 미국 해외선교회가 체로키 부족 가운데 세운 선교부의 마지막 흔적이다. 선교부의 이름은 십팔세기에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다 스물아홉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에게서 따왔다.

브레이너드 선교 묘역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선교부 건물도 학교도 사라지고 무덤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은 낯선 이들을 위해 자기 자녀까지 묻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Brainerd Mission Cemetery — Chattanooga, Tennessee, US

The Brainerd Mission Cemetery is all that remains of the mission the American Board established among the Cherokee in 1817. It was named for David Brainerd, the young missionary to Native peoples who died of tuberculosis at twenty-nine in the previous century. Missionary families here built a chapel, a school, a mill and farms, teaching Cherokee children Scripture, reading, farming and trades, and helping put the Bible into the Cherokee language. Frontier fever spared no one: missionaries and their small children died in quick succession, and baptised Cherokee believers were buried in the same ground. In the 1830s the federal government forced the Cherokee west, this area became a gathering point for removal, and the mission closed. Some of the missionaries walked the whole of that bitter road, the Trail of Tears, with the people they served. Every building is gone; about a hundred graves inside a low stone wall now sit between a highway and a shopping centre.

✝ PILGRIM'S REFLECTIONThe mission and school are gone; only graves remain, proof that people buried even their own children for the sake of strangers. 'List my tears on your scroll' (Ps 56:8). When my work seems to bear nothing, I remember that God is cou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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