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경 이원영 목사 생가
안동 도산면 원촌리의 한옥은 신사참배 거부 신앙의 표상인 봉경 이원영 목사(1886~1958)가 태어난 생가다. 진성 이씨 명문가에서 자란 그는 1919년 예안 3·1만세운동을 계획·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옥중에서 이상동에게 복음을 전해 받아 신앙에 눈떴다.
- 위치
- 경북 안동시, 대한민국
- 분류
- 유적
- 교파
- 개신교
- 시대
- 1886년 출생 (봉경 이원영)
- 좌표
- 36.7402, 128.8667
안동 도산면 원촌리의 한옥은 신사참배 거부 신앙의 표상인 봉경 이원영 목사(1886~1958)가 태어난 생가다. 진성 이씨 명문가에서 자란 그는 1919년 예안 3·1만세운동을 계획·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옥중에서 이상동에게 복음을 전해 받아 신앙에 눈떴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목사가 된 그는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이를 우상숭배로 여겨 끝까지 거부했으며, 그 대가로 서너 차례 투옥되어 모진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에는 신사참배로 무너진 한국 장로교회의 회개와 재건에 앞장서 초대 총회장을 지내며 교회의 정화를 이끌었다. 유교 명문가의 독립운동가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목회자로 나아간 그의 생애는, 우상 앞에 절하지 않은 한국 교회의 양심을 대표한다. 이 생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에 의해 한국기독교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과 지척인 유교 문화의 본향에서 신앙의 지조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 준다. 순례자는 소박한 도산의 한옥 마당에서, 목숨을 걸고 첫째 계명을 지킨 한 신앙인의 곧은 절개와 옥중에서 복음을 만나 회심한 극적인 삶의 여정을 함께 마주하게 된다.
자주 묻는 질문
봉경 이원영 목사 생가은(는) 어디에 있나요?
경북 안동시,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위도 36.7402, 경도 128.8667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봉경 이원영 목사 생가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886년 출생 (봉경 이원영) 시기의 유산입니다.
봉경 이원영 목사 생가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안동 도산면 원촌리의 한옥은 신사참배 거부 신앙의 표상인 봉경 이원영 목사(1886~1958)가 태어난 생가다. 진성 이씨 명문가에서 자란 그는 1919년 예안 3·1만세운동을 계획·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옥중에서 이상동에게 복음을 전해 받아 신앙에 눈떴다.
봉경 이원영 목사 생가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명문가의 독립운동가는 감옥에서 복음을 만나 목사가 되었고, 우상 앞에 절하기를 목숨 걸고 거부했습니다. 이 소박한 한옥 마당에서, 첫째 계명을 지키는 일이 곧 자유와 존엄을 지키는 일이었음을 배웁니다.
Birthplace of Rev. Yi Won-yeong — Andong-si, Gyeongsangbuk-do, KR
The hanok in Wonchon-ri, Dosan-myeon, Andong, is the birthplace of Rev. Yi Won-yeong (1886-1958), an icon of resistance to forced Shinto worship. Raised in the noble Jinseong Yi clan, he planned and led the 1919 Yean March 1st demonstration, was imprisoned, and awoke to faith in prison through Yi Sang-dong. Ordained in 1930 after Pyongyang Seminary, he refused Shinto worship as idolatry to the end, suffering imprisonment several times. After liberation he led the repentance and rebuilding of a Korean Presbyterian church broken by Shinto compromise, serving as an early general assembly moderator and guiding its purification. His path from Confucian-gentry independence activist to Shinto-refusing pastor embodies the conscience of the Korean church that would not bow before idols. The house is designated a Korean Christian historic site by the Presbyterian Church (Tonghap), where pilgrims meet the upright integrity of one who kept the first commandment at the cost of his free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