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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센터

박물관개신교 일리노이 휘튼 · 1980 · Billy Graham Center

빌리 그레이엄 센터는 휘튼대학 교정에 1980년 문을 연 박물관이자 기록보관소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젖소 농장에서 자란 빌리 그레이엄은 이 학교를 졸업한 뒤 1949년 로스앤젤레스 천막 집회로 이름이 알려졌고, 이후 육십 년 가까이 백팔십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해 이억 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설교했다.

위치
일리노이 휘튼, 미국
분류
박물관
교파
개신교
시대
1980
좌표
41.8667, -88.0994

빌리 그레이엄 센터는 휘튼대학 교정에 1980년 문을 연 박물관이자 기록보관소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젖소 농장에서 자란 빌리 그레이엄은 이 학교를 졸업한 뒤 1949년 로스앤젤레스 천막 집회로 이름이 알려졌고, 이후 육십 년 가까이 백팔십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해 이억 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설교했다. 그는 젊은 시절 동료들과 함께 몇 가지 원칙을 정했는데, 헌금은 반드시 공개하고 회계는 남에게 맡기며, 여성과 단둘이 있지 않고, 다른 교회를 헐뜯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단순한 규칙이 평생 그의 사역을 지켜 주었다. 1953년부터는 인종을 나누어 앉히는 집회를 거부하고 직접 밧줄을 걷어 냈으며, 1973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한자리에 백만 명이 넘게 모여 한국 교회사에 오래 기억되었다. 센터의 전시실은 미국 전도 운동의 역사를 순서대로 보여 주고, 지하 보관소에는 여러 선교 단체와 전도자들이 남긴 편지와 일지가 보존되어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찾아온다. 한 사람의 이름을 붙였으나, 결국 복음이 어떻게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해졌는지를 보여 주는 자리다.

✝ 순례자의 묵상이 사람의 사역을 끝까지 지킨 것은 큰 은사가 아니라 돈과 사람 관계에서 스스로 정한 몇 가지 원칙이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지키는 원칙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출처·검증
근거 1

자주 묻는 질문

빌리 그레이엄 센터은(는) 어디에 있나요?

일리노이 휘튼, 미국에 있습니다. 위도 41.8667, 경도 -88.0994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센터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980 시기의 유산입니다.

빌리 그레이엄 센터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빌리 그레이엄 센터는 휘튼대학 교정에 1980년 문을 연 박물관이자 기록보관소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젖소 농장에서 자란 빌리 그레이엄은 이 학교를 졸업한 뒤 1949년 로스앤젤레스 천막 집회로 이름이 알려졌고, 이후 육십 년 가까이 백팔십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해 이억 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설교했다.

빌리 그레이엄 센터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 사람의 사역을 끝까지 지킨 것은 큰 은사가 아니라 돈과 사람 관계에서 스스로 정한 몇 가지 원칙이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Billy Graham Center — Wheaton, Illinois, US

The Billy Graham Center, opened on the Wheaton College campus in 1980, is a museum and archive. Raised on a North Carolina farm, Graham graduated from this college, became widely known through a tent campaign in Los Angeles in 1949, and over nearly sixty years preached in more than 180 countries to audiences totaling in the hundreds of millions. As a young man he and his colleagues set themselves a few rules: publish the offerings and let others handle the books, never be alone with a woman other than his wife, and never disparage other churches. Those simple commitments guarded his ministry for a lifetime. From 1953 he refused to hold segregated meetings and pulled down the ropes himself, and in 1973 a single gathering on Yoido Plaza in Seoul drew over a million people. Galleries trace the history of evangelism, while the archives below preserve the records of many mission agencies.

✝ PILGRIM'S REFLECTIONWhat guarded this man to the end was not his gifting but a few rules he set himself about money and relationships.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that brings salvation' (Rom 1:16). What do I keep when nobody wat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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