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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피델리스 대성당

성당천주교 캔자스 빅토리아 · 1911 · Basilica of St. Fidelis

캔자스 서부의 허허벌판에 솟은 성 피델리스 대성당은 볼가 독일인이라 불린 이민 농민들이 세운 거대한 석회암 성당이다. 이들은 본래 독일 사람이었으나 여러 세대 동안 러시아 볼가 강가에 살다가, 병역과 종교 문제로 압박을 받자 187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캔자스의 마른 초원에 정착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위치
캔자스 빅토리아, 미국
분류
성당
교파
천주교
시대
1911
좌표
38.856389, -99.150833

캔자스 서부의 허허벌판에 솟은 성 피델리스 대성당은 볼가 독일인이라 불린 이민 농민들이 세운 거대한 석회암 성당이다. 이들은 본래 독일 사람이었으나 여러 세대 동안 러시아 볼가 강가에 살다가, 병역과 종교 문제로 압박을 받자 187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캔자스의 마른 초원에 정착했다. 나무가 없는 땅이어서 처음에는 흙을 파고 잔디를 얹어 집을 지었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그런 사람들이 1908년 큰 성당을 짓기로 하고, 각 가정이 정해진 헌금과 함께 손수 캔 석회암을 여섯 수레씩 날라 오기로 약속했다. 남자들은 밭일을 마친 뒤 채석장에서 돌을 캤고, 부인들은 밥을 지어 날랐다. 1911년 완성된 성당은 천백 명이 앉을 수 있어 마을 인구를 훨씬 넘어섰고, 1912년 이곳을 지나던 정치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초원의 대성당이라 부른 뒤 그 별명이 굳어졌다. 2014년 대성전 칭호를 받았으며, 지금도 이 성당을 세운 이들의 후손이 같은 자리에 앉아 예배드린다. 지평선밖에 없는 들판 한가운데 두 개의 첨탑이 솟아 있어, 멀리서부터 보이는 그 모습이 가난한 이들의 결심을 대신 말해 준다.

✝ 순례자의 묵상흙집에 살던 사람들이 밭일을 마친 뒤 돌을 캐어 이 성당을 세웠습니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드리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9). 나는 형편이 어렵다는 말로 드리는 일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출처·검증
근거 1

자주 묻는 질문

성 피델리스 대성당은(는) 어디에 있나요?

캔자스 빅토리아, 미국에 있습니다. 위도 38.856389, 경도 -99.150833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성 피델리스 대성당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911 시기의 유산입니다.

성 피델리스 대성당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캔자스 서부의 허허벌판에 솟은 성 피델리스 대성당은 볼가 독일인이라 불린 이민 농민들이 세운 거대한 석회암 성당이다. 이들은 본래 독일 사람이었으나 여러 세대 동안 러시아 볼가 강가에 살다가, 병역과 종교 문제로 압박을 받자 187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캔자스의 마른 초원에 정착했다.

성 피델리스 대성당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흙집에 살던 사람들이 밭일을 마친 뒤 돌을 캐어 이 성당을 세웠습니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드리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Basilica of St. Fidelis — Victoria, Kansas, US

Rising from the open plains of western Kansas, the Basilica of St. Fidelis is a vast limestone church built by immigrant farmers known as Volga Germans. Their ancestors were Germans who had lived for generations along the Volga River in Russia; pressed over military service and religion, they came to America in the 1870s and settled this dry prairie. There were no trees, and the first families lived in dugouts roofed with sod. Yet in 1908 these same people resolved to build a great church, each household pledging a set sum of money and six wagon loads of limestone quarried by their own hands. Men cut stone after the day's fieldwork while the women carried out meals. Finished in 1911, it seats eleven hundred, far more than the town's population. Passing through in 1912, William Jennings Bryan called it the Cathedral of the Plains, and the name stuck. It became a basilica in 2014.

✝ PILGRIM'S REFLECTIONPeople living in sod dugouts quarried stone after a day in the fields to raise this church. 'The glory of this present house will be greater than the glory of the former house' (Hag 2:9). Do I put off giving by pleading hard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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