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막시맹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
생막시맹라생트봄의 대성당은 1295년 앙주의 샤를 2세가 착공한 프로방스 최대의 고딕 성당으로, 이 지역에서 북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유일한 대형 성당이다. 1279년 이곳 지하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무덤이라 주장된 석관이 발견되면서 성당 건립이 시작되었는데, 이 주장의 근거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남프랑스에 와서 생트봄 동굴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중세 전승이며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고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생막시맹라생트봄, 프랑스
- 분류
- 성지
- 교파
- 천주교
- 시대
- 1295
- 좌표
- 43.452639, 5.86375
생막시맹라생트봄의 대성당은 1295년 앙주의 샤를 2세가 착공한 프로방스 최대의 고딕 성당으로, 이 지역에서 북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유일한 대형 성당이다. 1279년 이곳 지하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무덤이라 주장된 석관이 발견되면서 성당 건립이 시작되었는데, 이 주장의 근거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남프랑스에 와서 생트봄 동굴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중세 전승이며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고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이 전승은 베즐레의 같은 주장과 경합했고, 결국 교황이 프로방스 쪽 주장을 인정하면서 이곳이 중세 후기의 주요 순례지가 되었다. 성당 안의 1773년 제작 파이프 오르간은 혁명기에 오르가니스트가 라 마르세예즈를 연주해 파괴를 면했다는 일화와 함께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역사적 악기다. 유물의 진위와는 별개로, 부활의 첫 증인이 된 여인을 유럽이 얼마나 오래 기억하려 했는지를 보여 주는 자리다. 성당 지하 묘지는 4세기의 것으로, 초기 그리스도교 석관 네 기가 원래 자리에 남아 있어 이 자리가 로마 시대부터 묘지였음을 보여 준다. 성당은 계획된 종탑과 정면을 끝내 짓지 못해 서쪽 벽이 거친 돌 그대로 남아 있다.
자주 묻는 질문
생막시맹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은(는) 어디에 있나요?
생막시맹라생트봄, 프랑스에 있습니다. 위도 43.452639, 경도 5.86375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생막시맹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295 시기의 유산입니다.
생막시맹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생막시맹라생트봄의 대성당은 1295년 앙주의 샤를 2세가 착공한 프로방스 최대의 고딕 성당으로, 이 지역에서 북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유일한 대형 성당이다. 1279년 이곳 지하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무덤이라 주장된 석관이 발견되면서 성당 건립이 시작되었는데, 이 주장의 근거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남프랑스에 와서 생트봄 동굴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중세 전승이며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고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생막시맹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요 20:18). 부활의 첫 증인이 된 여인을 유럽이 오래 기억했습니다.
Basilica of Mary Magdalene, Saint-Maximin-la-Sainte-Baume — Saint-Maximin-la-Sainte-Baume, FR
Begun in 1295 by Charles II of Anjou, this is the largest Gothic church in Provence and the only major building in the region in the northern Gothic manner. Construction followed the discovery in 1279 of a sarcophagus here claimed as the tomb of Mary Magdalene, resting on a medieval tradition that she came to southern France and ended her life in the grotto of Sainte-Baume — a tradition with no biblical basis and no historical confirmation, which competed with the rival claim at Vézelay until papal recognition settled it here and made this a major late-medieval pilgrimage site. The organ of 1773 survives almost unaltered, one of the finest historic instruments in France, reportedly spared in the Revolution when its organist played the Marseilla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