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니 성모 수도원
겟세마니 수도원은 1848년 프랑스에서 건너온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이 켄터키의 숲과 밭 사이에 세운 수도원이다. 트라피스트는 침묵과 노동과 기도를 규칙으로 삼는 공동체로, 이곳 수도사들은 새벽 세 시가 조금 지나 첫 기도를 드리고 하루에 일곱 차례 성당에 모여 시편을 노래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밭과 작업장에서 일한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위치
- 켄터키 트라피스트, 미국
- 분류
- 수도원
- 교파
- 천주교
- 시대
- 1848
- 좌표
- 37.664167, -85.529444
겟세마니 수도원은 1848년 프랑스에서 건너온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이 켄터키의 숲과 밭 사이에 세운 수도원이다. 트라피스트는 침묵과 노동과 기도를 규칙으로 삼는 공동체로, 이곳 수도사들은 새벽 세 시가 조금 지나 첫 기도를 드리고 하루에 일곱 차례 성당에 모여 시편을 노래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밭과 작업장에서 일한다. 이 수도원이 널리 알려진 것은 토머스 머튼 때문이다. 그는 1941년 스물여섯 나이에 이곳에 들어와 루이 신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1948년에 낸 자서전 '칠층산'으로 전후 세대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후 기도와 침묵과 평화에 관한 글을 쉼 없이 써냈다. 1968년 아시아를 여행하던 중 방콕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이곳으로 옮겨져 수도원 묘지의 똑같이 생긴 흰 십자가 아래 다른 수도사들과 나란히 묻혔다. 수도원은 지금도 침묵 피정을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데, 개신교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방을 얻어 며칠을 머물며 기도와 산책과 침묵 속에 지낼 수 있다. 성당 뒤편 언덕과 숲길을 걷다 보면 말이 줄어드는 자리에서 마음이 오히려 또렷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주 묻는 질문
겟세마니 성모 수도원은(는) 어디에 있나요?
켄터키 트라피스트, 미국에 있습니다. 위도 37.664167, 경도 -85.529444이며, 구글 지도 등으로 길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겟세마니 성모 수도원은(는) 어느 시대의 유산인가요?
1848 시기의 유산입니다.
겟세마니 성모 수도원은(는) 어떤 순례지인가요?
겟세마니 수도원은 1848년 프랑스에서 건너온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이 켄터키의 숲과 밭 사이에 세운 수도원이다. 트라피스트는 침묵과 노동과 기도를 규칙으로 삼는 공동체로, 이곳 수도사들은 새벽 세 시가 조금 지나 첫 기도를 드리고 하루에 일곱 차례 성당에 모여 시편을 노래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밭과 작업장에서 일한다.
겟세마니 성모 수도원은(는) 개신교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곳 수도사들의 무덤은 이름만 다를 뿐 십자가 모양과 크기가 모두 똑같습니다. 세상에 널리 읽힌 사람도, 평생 소를 먹인 사람도 같은 자리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Abbey of Our Lady of Gethsemani — Trappist, Kentucky, US
Gethsemani was founded in 1848 by Trappist monks sent from France to the Kentucky hills. The Trappists live by silence, work and prayer: the brothers rise for the first office soon after three in the morning, gather seven times a day to chant the psalms, and spend the rest of the day in the fields and workshops. The abbey became known worldwide through Thomas Merton, who entered in 1941 at twenty-six, took the name Father Louis, and whose 1948 autobiography 'The Seven Storey Mountain' moved a whole postwar generation before he went on writing about prayer, silence and peace. He died suddenly in Bangkok in 1968 while travelling in Asia and was brought home to be buried under a plain white cross identical to those of his brothers. The monastery still receives retreatants of any church for days of silence, and the wooded hills behind the chapel are made for slow walking and unhurried prayer.